비가 왔을때.

 비스듬한 사각형으로 되어있는 창틀사이로

비소리가 들려왔다.

이가 꽉 물리지 않은 창은,

작지만 긴틈으로

비소리와  차가운 공기도 함께  불어넣어주었다.


 


오래된 형광등 불빛은 눈에 익숙해져,

어떤 책을 펼쳐도 글귀들은 모두 같은 문장처럼 보였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도, 

내가 가지고 있는것도

못견디게 그리워지는 하루가 

비소리에 한층 무거워졌다.


 


비는 모든 지붕을 스치며

잠시 그 위에서 살다

다시 처마 끝에서

또 다른 모습의 ‘비’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갑자기 내리는 여름비는 머리카락을 적시고

속눈섭으로 떨어지는 '비'를 볼때가 있었다.


운이 좋으면,

크게 맺힌 그 ‘비’ 방울 속으로

세상이 잠깐 비쳐 보일 때도 있었다.


둥굴게 말려진 길이나, 키작은 나무, 고장난 횡당보도 신호등,

색이 바랜빨간 우체통이나, 공중전화 박스를 볼때면

내가 만든 비방울이  맺히는걸 느낄수가 있었다.



 


‘눈’은

내 안의 세계를 밀어 올려

바깥 세상과 조우하게 했다.


마치

빨간 물감과 파란 물감이 섞여

뜻밖의 색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전혀 다른 공간이

순간적으로 펼쳐지는 느낌.


그건 온몸에

수천 개의 벼락이 동시에 내리꽂히는 듯한

감각이었다.


나는 그럴 때면

눈을 깜빡이는 것,

새끼손가락으로 속눈썹을 쓰다듬는 것,

가장 좋아하는 책 제목을 조용히 되뇌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했다가는

정말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비가 왔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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