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협상, 스와프, 그리고 한국의 기로

 2025년 가을, 한미 관세협상은 교착상태다. 미국은 반도체·조선·자동차·의약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요구했고, 한국은 이를 “국가 생존권” 문제로 맞섰다. 표면상 무역 불균형 조정이지만, 실상은 지정학과 동맹을 건 압박이었다.

1. 3,500억 달러 카드의 등장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 직후 불과 몇 분 만에 “3,500억 달러는 선불”이라는 강경 발언을 꺼냈다. 한국이 먼저 제안했다는 해석도 있고, 미국이 강하게 요구했다는 해석도 있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선지급·선투자 구도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맞서 “미국의 과도한 요구”라는 피해자 프레임을 부각시켰다. 언론도 이를 따라 “미국 압박 → 한국의 고통”이라는 구도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반중 시위나 “차이나 아웃” 집회는 혐중 프레임으로 덧씌워지거나 보도에서 배제되었다. 국민의 눈에는 점점 “미국=압박자, 중국=대안”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2. 통화스와프—정치적 카드인가, 금융안정 장치인가

이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해법처럼 제시했다. 언론과 유튜브는 이를 마치 정당한 요구처럼 포장했지만, 사실 통화스와프는 정치 협상용 칩이 아니다.



  • 주체: 통화스와프는 행정부가 아닌 연준(Fed) 권한이다. 백악관·상무부와 무역 거래처럼 딜을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 용도: 달러 스와프 라인은 해외 달러자금 경색 → 미국 금융시장 충격 차단을 목적으로 한다. 관세·투자 협상의 대가가 아니다.

  • 대상: 상시 스와프 라인은 미국이 지정한 ‘빅5’(캐나다·영국·ECB·일본·스위스)에만 열려 있다. 한국은 포함되지 않는다.

  • 임시 사례: 한국은 2008·2020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시적 스와프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적 달러 경색 대응이지, 외교 협상용 보상책이 아니었다.

  • 대체 수단: 연준은 이미 **FIMA 레포(미국채 담보 달러 단기조달)**라는 상시 제도를 두고 있다. 한국도 이용 가능하지만, 이는 금융시장용 유동성 창구이지 정부 재정에 쓰는 돈이 아니다.

즉, 통화스와프는 정치적 거래칩이 아니라, 연준의 독립적 금융안정 도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이 카드를 꺼낸 이유는 명확하다.
“100% 거절될 것을 알면서도 제안함으로써, 미국이 한국의 요구를 외면했다”는 프레임을 만드는 전략이었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요구를 던져놓고, 거절당하면 곧바로 “미국의 압박과 외면”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통화스와프 카드는 경제적 실효성보다 정치적·심리적 효과를 노린 상징적 제안이었다. 이는 국내 여론을 움직이는 데에는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국제금융의 제도적 성격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3. 중국 의존도 강화 ― 가능성과 징후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을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반미 여론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중국을 대안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여러 징후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 무역 기업의 위안화 결제 확대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수출입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가 요구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수입대금 일부가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처리된 사례도 확인된다.

  • 한국은행의 분석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원화와 위안화 간의 동조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가 점점 더 중국 금융시장과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다.

  • 정책·금융 연구 제언
    국내 금융연구기관들은 위안화 무역결제 확대,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 등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직 정부 정책으로 확정되진 않았지만, 검토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 외환시장 제도 변화
    정부는 외환시장 24시간 운영과 원화 해외결제(offshore settlement) 허용을 준비 중이다. 이는 달러뿐 아니라 위안화와의 직접 결제 가능성을 넓히는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런 흐름들이 맞물리면서, 한국은 점차 중국 쪽으로 기울 수 있는 구조적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다.


4. 미국의 입장 — 압박과 고민

미국은 한국을 완전히 놓을 수 없다.

  • 반도체 공급망: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핵심 플레이어다.

  • 안보적 가치: 동북아에서 중국·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한국의 위치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인가”라는 의심 속에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산 반도체 규제, 제약 승인 강화, 자동차·조선 분야의 비관세 장벽이 하나둘 늘고 있다.


5. 결론 — 협상은 하고 있다, 그러나 감시는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를 단순히 무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요구를 “미국의 압박”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해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은 분명하다. 협상 전술 측면에서 보면 일정 부분 효과를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의 근본적 노선이 중국에 더 가까이 서 있다는 점이다. 협상은 치밀하게 하고 있을지 몰라도, 최종 결과가 한국을 중국 종속의 길로 이끌 위험은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맹목적 비난이나 맹목적 지지가 아니다.
정부의 협상력은 인정하되, 그 결과가 한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국민이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협상이 잘 풀리더라도 그것이 곧 국민의 이익과 같은 방향인지 확인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마지막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이 서 있는 자리는 단순한 관세 협상의 자리가 아니다.
동맹과 자율, 자유와 종속 사이의 갈림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