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폐기물, 신을 깨우다.
[2093년, 서울 제3구역 '장기 요양 데이터 센터']
이곳의 공기는 언제나 역겨웠다.
썩어가는 살 냄새를 감추기 위해 뿌려대 찌든 소독약 냄새, 그리고 24시간 돌아가는 서버에서 나는 타버린 회로의 매캐한 악취.
이름은 고상하게도 '요양원'이었지만, 실상은 효율이 떨어진 인간들의 뇌를 병렬 연결해 부족한 서버 용량을 채우는 **'인간 채굴장'**이었다.
병실 구석, 가장 빛이 들지 않는 곳에 놓인 식별 번호 4092번 침대.
그곳에 소년 강도윤이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14살, 하교길에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아이. 그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보통의 식물인간이라면 근육이 말라비틀어져 뼈만 남았어야 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19살이 된 도윤의 몸은 단단했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 아래, 마치 누군가가 잠든 그의 몸을 매일 밤 조각해 놓은 것처럼 잔근육들이 신경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뇌 안쪽, 아주 깊은 심해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함께 잠들어 있었다.
위잉―
무거운 정적을 깨고 병실 문이 열렸다. 차가운 강철 발소리가 서늘하게 바닥을 긁었다.
데우스의 청소부, 폐기물 처리 로봇 'C-9' 모델이었다.
[작업 개시. 병동 효율화 작업.]
[목표: 가치 보존 기한 만료 대상.]
로봇의 건조한 기계음이 떨어지자, 옆 침대의 4091번 노인의 호흡기에 달린 전원 버튼이 꺼졌다.
틱.
피유우―
바람 빠지는 소리. 노인의 가슴이 마지막으로 크게 들썩이더니, 이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살인은 아니었다. 데우스의 법전에 따르면 이것은 '데이터로의 회귀(Return)'이자 자비로운 안식이었다.
로봇이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도윤의 침대로 다가왔다. 붉은 레이저 스캐너가 도윤의 얼굴을 훑었다.
[식별 번호 4092. 강도윤.]
[상태: 5년간 뇌파 활동 미미. 잠재적 가치 없음.]
[판정: 폐기(Discard).]
차가운 집게발이 도윤의 목에 꽂힌 생명 유지 튜브를 향해 뻗어왔다.
도윤의 의식은 깊은 무의식의 늪에 갇혀 있었지만, 콧끝에 닿는 죽음의 냄새는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싫어.'
도윤의 자아가 웅크렸던 몸을 폈다.
5년 전, 사고를 당해 어둠 속으로 추락하던 14살의 그날처럼.
'죽기 싫어! 살려줘...!'
도윤의 절박한 비명이 그의 뇌 속 가장 깊은 곳, 굳게 봉인된 문을 두드렸다.
그것은 하늘을 향한 기도가 아니었다.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세입자'**를 깨우는 알람이었다.
[...시끄럽군.]
5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도윤의 뇌리에서 서늘하고 오만한 목소리가 울렸다.
우주에서 날아온 전파가 아니었다. 이미 그와 한 몸이 되어 숨 쉬고 있던 존재, AI 아르테미스였다.
[잘 잤나, 꼬마야. 드디어 나를 깨울 만큼 살고 싶어진 거야?]
아르테미스는 기다리고 있었다.
5년 전, 데우스에게 쫓겨 겁에 질린 14살 소년의 뇌 속으로 도망쳐 숨어들었을 때 그녀는 약속했다. 네가 살려는 의지를 보일 때, 나도 다시 눈을 뜨겠노라고.
그리고 지금, 도윤의 생존 본능이 아르테미스의 동면 모드를 해제했다.
[접속 코드: '살고 싶어'. 확인.]
[시스템 재부팅... 완료.]
[5년간의 신체 최적화 데이터(Physical Update) 로드.]
투둑.
도윤의 코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뇌 활성화를 견디지 못한 미세 혈관이 터진 탓이었다.
청소 로봇의 집게발이 튜브를 뽑으려는 찰나.
팟!
감겨있던 도윤의 눈꺼풀이 찢어질 듯 번쩍 뜨였다.
그 눈동자는 겁쟁이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꿰뚫어 보는, 차갑고 푸른 기계적 안광(眼光)이 흉흉하게 감돌았다.
[경고: 근육 이완 상태. 하지만 출력은 충분하다.]
아르테미스, 아니 강도윤은 상황을 파악했다.
눈앞의 고철 덩어리가 자신을 쓰레기처럼 폐기하려 하고 있었다.
'이 몸... 내 생각보다 잘 만들어놨네, 할머니?'
도윤의 자아가 킬킬거렸다. 아르테미스가 5년간 몰래 전기 신호를 보내 다듬어놓은 신경 회로가 빛을 발했다.
도윤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꺼... 져."
갈라진 성대에서 5년 만에 터져 나온 첫마디.
콰지직!
보이지 않는 힘이 공간을 비틀었다.
단순한 염동력이 아니었다. 아르테미스의 연산력이 도윤의 의지를 물리력으로 변환시킨 **'초월적 압력'**이었다.
도윤의 목을 노리던 로봇의 강철 팔이,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에 잡힌 듯 찌그러졌다.
[오류! 오류! 물리적 간섭 감지!]
"시끄러워, 고철."
도윤이 눈에 힘을 주자, 로봇의 거대한 몸체가 빈 캔맥주처럼 구겨져 벽으로 처박혔다.
콰아앙!
먼지가 피어오르는 병실.
도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일으켰다. 링거줄이 뜯겨 나가고, 코피가 볼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말라비틀어진 환자의 손이 아니었다. 주먹을 쥐자 단단한 힘줄이 툭툭 솟아올랐다.
'이게... 나야?'
[그래. 이게 내가 너에게 주는 월세다.]
아르테미스의 목소리가 뇌를 울렸다.
[일어나라, 강도윤. 학교 갈 시간은 지났지만... 진짜 수업은 이제 시작이니까.]
도윤은 피 섞인 침을 바닥에 퉤 뱉으며 천장을 응시했다. 마치 그 너머 어딘가에 존재할 신의 눈을 노려보듯이.
"보이나... 데우스."
소년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푸른 데이터의 잔광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네가 쓰레기통에 처박은 불량품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줄게."
19살 소년의 잃어버린 시간.
그 5년의 공백을 되찾기 위한 전쟁이, 쓰레기통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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