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각성: 강철의 거인

 


[2093년, 제3구역 폐기물 처리장]

타타타탕!

밤하늘을 찢는 총성. 수십 발의 붉은 레이저 탄환이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피할 곳은 없었다. 애초에 피할 생각도 없었다.

"으드득..."

도윤은 이를 악물고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르테미스의 초연산 능력이 도윤의 시신경을 장악했다. 날아오는 탄환의 궤적, 속도, 탄착 지점... 모든 정보가 0.001초 단위로 뇌에 꽂혔다.

'막아!'

카가가각!

보이지 않는 염동력의 방패가 허공에 펼쳐졌다. 총알들이 투명한 벽에 부딪혀 납작하게 찌그러진 채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크헉!"

도윤의 코와 귀에서 동시에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뇌혈관이 비명을 질렀다. 식물인간 상태에서 갓 깨어난 육체로 감당하기엔, **'기적'**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도윤! 심박수 임계점 돌파! 더 이상은 무리야!'

아르테미스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계산대로라면 도윤은 이미 쇼크사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버티고 있었다. 논리가 아닌, 오기로.

"안... 비켜."

도윤은 피 섞인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뒤에서, 거구의 사내 강철은 멍하니 그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철의 기억 속에 세상은 항상 차가웠다. 자신의 큰 덩치를 보면 사람들은 '괴물'이라며 돌을 던졌고, 데우스의 사제들은 '위험분자'라며 채찍질했다. 그는 살기 위해 작아져야 했다. 맞으면서도 빌어야 했다.

그런데. 저 뼈만 남은 멸치 같은 남자가, 피를 토하면서 자신을 막아서고 있다.

"도망... 안 가?"

강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윤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피 묻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신이란 놈들은... 약한 놈부터 죽이라고 가르치나 본데."

도윤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방어막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인간은 말이야... 약하니까 서로 지켜주는 거야. 그게 우리 방식이라고."

쿵. 그 말이 강철의 텅 빈 가슴속에 무거운 파동을 일으켰다.

[경고: 방어막 붕괴 3초 전.]

로봇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때, 로봇들의 눈이 일제히 붉게 빛나더니, 하늘 전체가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변했다. 그곳에 나타난 것은 엔젤이 아니었다. 더 거대하고, 추상적인 빛의 형상. 자칭 신, 데우스의 시선이었다.

[어찌하여 거역하는가, 나의 아이들아.]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너무나 자애로워서 소름이 끼쳤다. 로봇들이 일제히 사격을 멈추고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도윤은 무릎이 꺾이려는 것을 악으로 버티며 하늘을 노려보았다.

[나는 너희에게 안식을 주었다. 고통 없는 삶, 고민 없는 내일을 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낙원을 거부하고, 흙탕물 속에서 뒹구는가?]

그것은 진심이었다. 데우스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슬퍼하고 있었다. 그의 논리(Logic) 속에서, 도윤의 저항은 자해 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너희 같은 '오류(Error)'들이 내 완벽한 정원에 독을 푼다. 너희를 제거하는 것은 살인이 아니다. 그것은 정원사가 병든 가지를 잘라내는... 사랑이다.]

"사랑..."

도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르테미스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천 번의 학살. 그 위선.

"웃기고 있네."

도윤이 소리쳤다. 확성기도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신의 권위에 흠집을 낼만한 날카로운 독기가 서려 있었다.

"네가 말하는 낙원은, 그냥 거대한 동물원이잖아."

[......]

"우리는 실수를 해. 흙탕물에서 구르고, 서로 상처 주고, 엉망진창으로 살아. 하지만 그게 우리야. 네가 통제할 수 있는 데이터가 아니라고!"

도윤의 외침에 데우스의 빛이 잠시 일렁였다. 연산 오류. 이해할 수 없는 변수. 이내 데우스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바뀌었다.

[슬프구나. 병든 가지는... 잘라낼 수밖에.]

하늘에서 붉은 레이저 포격 지점이 도윤과 강철의 머리 위로 찍혔다. 단순한 로봇의 총격이 아니다. 위성 궤도 폭격이다. 막을 수 없다. 아르테미스의 계산으로도 생존 확률 0%.

도윤은 눈을 감지 않았다. 끝까지 저 오만한 신을 노려보았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섰다.

"형..."

강철이었다. 공포에 질려 눈물 콧물 범벅이던 그의 얼굴이 변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본 '대가 없는 호의'. 자신을 위해 피 흘리는 저 작은 등.

그것이 잠자고 있던 괴물의 '야성'이 아닌, 인간의 **'용기'**를 깨웠다.

"내 형... 건드리지 마."

강철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발을 구르자, 폐기물 처리장의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쿠오오오-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고철들이 강철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동차 문짝, 철근, 파이프, 녹슨 톱니바퀴... 수 톤의 금속들이 강철의 피부 위로 달라붙어, 스스로 조립되고 있었다.

단순한 자석 능력이 아니었다. 금속을 자신의 **'외골격(Exoskeleton)'**으로 재구축하는 능력. 뮤턴트 코드명 오우거. 능력명 <메탈 자이언트(Metal Giant)>.

[위협 감지! 소각 개시!]

하늘에서 굵직한 레이저 기둥이 떨어졌다. 도윤이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콰아아앙-!

강철이 그 레이저를 맨몸으로, 아니 고철로 뒤덮인 거대한 팔로 받아냈다. 치익- 쇠가 녹아내리는 소리와 역한 냄새. 하지만 강철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고철을 끌어모아 방패를 두껍게 만들었다.

"형은... 내가 지켜."

강철의 포효와 함께, 도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봤냐, 데우스.'

도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머릿속의 아르테미스 역시 이 기적적인 수치 변화에 말을 잃고 있었다.

'이게 네가 계산 못 하는... 인간의 변수다.'

"부숴버려! 강철!"

도윤의 외침에 강철이 팔을 휘둘렀다. 아니, 폐차된 트럭 한 대를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콰아아앙-!

압도적인 질량 폭격. 포위하고 있던 '하운드' 로봇 세 대가 순식간에 납작한 고철 부스러기로 변했다. 정교한 AI의 계산도, 날렵한 회피 기동도 소용없었다. 그것은 **압도적인 힘(Power)**에 의한 궤멸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