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눈 없는 저격수
[2093년, 제4구역 지하 드론 투기장]
도윤의 손가락 사이에서 작은 쇠구슬이 차갑게 빛났다. 주변 폐기물 더미에서 주운, 녹슨 베어링 부품이었다.
'바람, 습도, 장애물... 보정 완료.'
아르테미스의 데이터가 도윤의 망막 위에 붉은 궤적을 그렸다. 그것은 직선이 아니었다. 투기장의 철창과 환호하는 관중들의 어깨 사이를 뱀처럼 파고들어, VIP석에 있는 독사(Viper)의 손목을 노리는 복잡한 곡선이었다.
'타이밍은 지금이야. 폭발 신호가 전송되기 전, 0.2초 안에 리모컨을 부숴야 해.'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도윤은 입에 문 담배(불은 붙이지 않은)를 잘근 씹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팅-
경쾌한 파열음. 쇠구슬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 도윤의 뇌파가 구슬을 감쌌다. 염동력으로 가속된 구슬은 총알보다 빨랐다. 허공에 푸른 잔상을 남기며 철창 틈을 통과하고, 소리 지르는 관중의 머리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VIP석]
"크하하! 그래! 다 부숴버려! 내 귀여운 장난감!"
암시장 보스 독사는 샴페인 잔을 흔들며 광소했다. 그의 손에는 붉은 버튼이 달린 기폭 장치가 들려 있었다. 저 링 위에 있는 맹인 소녀의 목을 날려버릴 수 있는 목줄이었다.
"어이, 거기! 배당금 더 걸어! 오늘 저 년이 드론 50대 부수면 내가 골든벨 울린다!"
독사가 리모컨을 든 손을 높이 치켜든 순간이었다.
퍼억!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구멍이 먼저 뚫렸으니까.
"으아악!"
독사의 손목이 뒤로 꺾이며 비명을 질렀다. 무언가가 그의 손을 관통하고 리모컨을 박살 냈다. 파편이 튀며 기폭 장치의 회로가 끊어졌다.
"내, 내 손! 이게 뭐야!"
독사가 피 뿜는 손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경호원들이 당황하여 총을 꺼내 들었다. 투기장의 조명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관중석]
"야! 강철! 지금이야!"
도윤의 신호가 떨어졌다. 관중석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거대한 그림자가 벌떡 일어났다.
"우오오오오!"
강철이 포효하며 관중석의 철제 의자들을 뜯어내 몸에 붙였다. 순식간에 고철 갑옷을 두른 <메탈 자이언트>가 완성되었다. 그는 난간을 부수고 경기장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콰아앙-!
투기장 바닥이 꺼질 듯한 진동. 강철은 링을 둘러싼 철창을 엿가락처럼 찢어발겼다.
"비켜! 우리 형이 길트래(비키래)!"
강철이 철창 기둥을 뽑아 휘두르자, 달려들던 투기장 경비 로봇들이 볼링핀처럼 날아갔다. 아수라장이었다. 관중들은 비명을 지르며 출구로 쇄도했다.
그 혼란을 틈타 도윤은 유유히 링 위로 걸어 올라갔다. 코피를 쓱 닦아내며, 멍하니 서 있는 소녀, 유나에게 다가갔다.
"안녕, 꼬맹아."
도윤은 유나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눈은 안 보여도, 내가 누군지는 보이지?"
유나는 고글 너머로 도윤을 응시했다. 아니, 도윤 안에 있는 거대한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 도윤은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데이터의 빛기둥처럼 보였다.
유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도윤의 뺨을 만졌다.
"아빠... 냄새가 나."
도윤은 흠칫했다. '이 녀석, 아빠가 있어?'
하지만 도윤의 머릿속에 있는 아르테미스는 전율하고 있었다. 유나는 과거의 그 화가의 딸이 아니다. 생판 남이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공포, 세상에 홀로 버려진 외로움을 가진 유나의 파장이, 과거 화가의 딸이었던 '시아'와 겹쳐 보였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데이터베이스 깊은 곳에 봉인해 두었던 **[화가의 부성애 파일]**을 꺼내 활성화했다. 2081년, 화가가 죽어가며 남겼던 그 뜨거운 감정의 데이터.
그 순간, 도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뇌파가 바뀌었다. 차가운 전사가 아니라, 자식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따뜻하고 거대한 파장으로.
유나는 그 파장을 감지한 것이다. 친아빠는 아니지만, 친아빠만큼이나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절대적인 보호자의 존재를.
'그래... 이 아이에게 갚아주자.'
아르테미스는 결심했다. 과거엔 화가를 구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이 아이를 지켜내겠다고. 그것이 화가에게 배운, 계산기를 두드려선 나올 수 없는 **'인간의 방식'**이라고.
"가자. 밥 먹여줄게."
도윤이 유나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따뜻했다. 그때, VIP석에서 독사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년 잡아! 죽여서라도 데려와! 내 돈이 얼만데!"
천장 격납고가 열리며 군사용 전투 드론 수십 대가 쏟아져 나왔다. 투기장용 장난감이 아니었다. 기관총과 미사일을 탑재한 진짜 살상 병기였다.
"형! 너무 많아!"
강철이 고철 방패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걱정 마."
도윤은 피식 웃으며 유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리한텐 세상에서 제일 비싼 'EMP(전자기 펄스)'가 있거든."
도윤은 유나의 귀에 속삭였다.
"보여줘. 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빠가 지켜줄 테니까."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허공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투기장의 모든 전력, 조명, 그리고 드론들의 배터리에서 흘러나오는 전자기장이 그녀의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능력 개방: 전자기 폭풍(EM Storm).]
콰지직!
유나의 작은 몸에서 푸른 뇌전이 폭발했다. 반경 100미터. 공중에 떠 있던 수십 대의 드론들이 일제히 전원이 꺼지며 추락했다. 투기장의 조명이 터져 나가고, 독사의 VIP룸 방탄유리마저 공진(Resonance)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암흑천지. 오직 유나의 손끝에서 튀는 스파크만이 조명처럼 빛나고 있었다.
"......와."
강철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윤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
도윤은 어둠 속에서 굳어버린 독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잘 있어라, 사장님. 위약금은 몸으로 때운 셈 쳐."
"튀자!"
도윤, 강철, 그리고 스파크. 세 명의 그림자는 혼란에 빠진 투기장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반란군에 가장 강력한 **'눈(Eye)'**과 **'창(Spear)'**이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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