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유령이 사는 실험실
[2093년, 제4구역 지하 '닥터 노아의 연구소']
"우와... 여기 병원이야? 소독약 냄새가 진동을 하네." 강철이 코를 킁킁거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도윤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독한 소독약 내음 밑에 깔린, 비릿한 혈향과 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조심해. 이곳은 닥터 노아의 놀이터야. 데우스의 승천 의회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미치광이지.' 아르테미스의 경고가 뇌를 울렸다.
도윤 일행이 도착한 곳은 겉보기엔 폐쇄된 제약 공장이었지만, 그 지하에는 납치된 뮤턴트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하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언니... 여기 이상해요." 유나가 도윤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고글 너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전기가... 비명을 질러요. 너무 시끄러워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유나의 감각은 정확했다. 이곳의 모든 기계 장치는 치료가 아닌 고문을 위한 도구였으니까.
"걱정 마. 조용히 시켜줄게." 도윤은 유나의 머리를 짧게 쓰다듬어주고는 앞장섰다. 두꺼운 방탄유리 너머로 끔찍한 광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팔이 네 개 달린 기형아, 뇌가 드러난 채 수조에 둥둥 떠 있는 노인, 기계와 살점이 엉겨 붙어 숨만 헐떡이는 괴생명체들.
"이... 개자식들." 도윤의 주먹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어졌다. 데우스는 인간을 '보호'한다고 했지만, 그 보호의 이면에는 이런 '폐기물 처리'가 존재했던 것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인간을 갈아 넣어, 더 완벽한 신인류를 만들겠다는 닥터 노아의 망상.
'도윤, 목표물 감지. 지하 3층 격리실.' 아르테미스가 시야에 붉은 마커를 띄웠다. '코드명 글리치(Glitch). 본명은 진우. 능력은...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ing).'
"터널링?" '물체를 통과하는 능력이야. 하지만 제어가 안 돼서 몸이 시도 때도 없이 벽이나 바닥으로 빠져버려. 노아는 그 능력을 추출하려고 뇌를 난도질해놨어.'
일행은 서둘러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가장 깊은 곳, 두꺼운 납 벽으로 둘러싸인 독방. 그 안에서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히히! 히히히! 잡았다! 아니 못 잡았지? 여긴가? 저긴가?"
유리창 너머, 깡마른 소년 하나가 방 안을 미친 속도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니, 뛰는 게 아니었다. 소년의 몸은 마치 렉이 걸린 게임 캐릭터처럼 번쩍거리며 점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벽을 통과했다가, 천장에서 떨어졌다가, 바닥으로 꺼졌다가 다시 솟아올랐다. 그때마다 소년의 몸에서는 파직― 하고 푸른 스파크가 튀며 살점이 찢겨 나갔다. 능력을 쓸 때마다 몸이 붕괴되는 고통. 하지만 소년은 그 고통조차 놀이처럼 즐기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상태: 정신 붕괴 단계. 자아 상실.]
"저게... 사람이야?" 강철이 겁에 질려 물었다. "아니. 놈들이 저렇게 만든 거야." 도윤은 이를 갈며 격리실의 패널을 조작하려 했다.
그때. 치직― 허공에 홀로그램이 켜지며 기괴한 인영이 나타났다. 어린아이의 작은 몸집에 쭈글쭈글한 노인의 얼굴을 한 남자. 등 뒤에는 거미 다리 같은 네 개의 기계 팔이 달려 있었다. 닥터 노아였다.
[호오... 쥐새끼들이 들어왔군.] 노아의 홀로그램이 킬킬거렸다. [4092번, 폐기물 처리장에서 도망친 녀석이 너였나? 그리고 오우거에 스파크까지. 내 귀여운 실험체들을 다 모아왔네?]
"닥쳐, 이 미친 괴물아." 도윤이 쏘아붙였다.
[괴물? 칭찬이군. 나는 진화의 선구자다. 너희 같은 불량품들을 고쳐서 신에게 바치는 사제란 말이다.] 노아의 기계 팔이 화면 너머의 글리치를 가리켰다. [저 녀석을 데려가려고? 포기해. 저건 실패작이야. 뇌가 녹아서 통제가 안 돼. 문을 여는 순간, 양자 분해되어서 너희들까지 원자 단위로 찢어버릴걸?]
"그건 해봐야 알지." 도윤은 망설임 없이 격리실의 잠금장치에 손을 올렸다. 아르테미스가 해킹 코드를 주입하자, 육중한 문이 쿠웅― 하고 열렸다.
"히아아악! 문이 열렸다! 술래잡기! 술래잡기!" 글리치가 괴성을 지르며 도윤에게 달려들었다.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였다. 그의 몸이 도윤을 통과하려는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며 엄청난 진동이 발생했다.
'도윤! 피해! 닿으면 네 심장도 멈춰!'
하지만 도윤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10년 전 식물인간이 되기 직전,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떠올렸다.
탁.
도윤은 글리치의 멱살을 잡았다. 아니, 정확히는 글리치의 고유 진동수(Frequency)에 자신의 뇌파를 강제로 동기화시켜 실체를 잡아낸 것이다.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손바닥을 덮쳤다.
"으아아! 뜨거워! 아파! 이거 놔!" 글리치가 발버둥 쳤지만, 도윤은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꽉 끌어안았다. 떨리는 소년의 몸을, 붕괴되어 가는 그 영혼을.
"진우야." 도윤이 소년의 본명을 불렀다. 그 낯선 울림에, 미쳐 날뛰던 글리치의 진동이 순간 멈칫했다.
"많이 아팠지? 흔들려서 무서웠지?" 도윤은 피 묻은 손으로 소년의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내가 잡았어." "......" "이제 안 흔들려도 돼. 내가 너의 '닻(Anchor)'이 되어줄게."
도윤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아르테미스의 연산 능력이 글리치의 폭주하는 양자 파동을 역산해 고정시켰다. 거짓말처럼, 소년의 몸이 떨림을 멈추고 온전한 실체를 되찾았다.
"어...? 안... 아파?" 글리치, 아니 진우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땅을 딛고 선 감각이었다.
도윤은 땀에 젖은 얼굴로 홀로그램 속의 노아를 노려보았다. "봤냐? 이게 네가 말한 불량품의 방식이다."
노아의 얼굴이 흥미로움에서 경악으로, 그리고 이내 탐욕으로 일그러졌다. [놀랍군... 감정 동기화로 양자 파동을 제어하다니. 너... 대체 정체가 뭐냐?]
"알면 다쳐." 도윤은 글리치를 강철에게 넘기며 씩 웃었다. "자, 볼일 끝났다. 이 지옥 구덩이, 무너뜨리고 나가자."
그렇게 세 번째 동료, 글리치가 그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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