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첫 번째 수업 (The First Lesson)


[2093년, 버려진 지하 배수로 - 임시 은신처]

성당을 뒤로하고 더 깊고, 더 축축한 어둠 속으로 기어 들어온 지 30분.

결국, 우려했던 사단이 나고 말았다.

"으으으... 형... 나, 나 그냥... 버리고 가..."

진우(글리치)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오물 섞인 바닥을 굴렀다.

능력 과부하로 인한 양자 붕괴(Quantum Decay). 소년의 몸이 깨진 영상 파일처럼 치직거리며, 현실 좌표를 잃고 흩어지고 있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분해되는 고통이 진우를 덮쳤다.

"진우야! 정신 차려! 형, 얘 몸이 자꾸 사라져! 어떡해?"

강철이 울먹이며 진우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투박한 손은 진우의 몸을 쑥 통과해 버렸다. 허공을 휘젓는 끔찍한 감각에 강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손끝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무서웠다. 공포가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것 같았다.

방금 연구소를 부순 건 아르테미스의 힘과 순간적인 분노에 휩쓸려 엉겁결에 저지른 일이었다. 하지만 아드레날린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금, 도윤은 그저 겁 많은 열아홉 살, 아니 정신 연령 14살의 소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친구랑 PC방에서 컵라면 내기를 하며 게임이나 돌려야 할 나이에,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이 상황은 너무나 가혹했다.

'어떡하지? 데리고 가면 100% 잡힐 텐데... 그렇다고 버리고 갈 수는 없잖아...'

도윤은 쿵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머릿속에서는 냉혹한 계산이 돌아갔다. 카이라는 괴물이 바로 뒤에 있다. 짐이 있으면 전멸이다.

"강철아... 일단, 일단 여기에 숨기자."

도윤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여기에? 말도 안 돼. 여긴 시궁창이야. 여기서 죽으라는 거야?"

"지금 데려가면 다 죽어! 아까 그 은색 괴물이 바로 뒤에 있다고! 일단 우리는 살고 봐야 할 거 아냐!"

도윤이 꽥 소리를 질렀다. 비겁한 변명인 걸 알지만, 공포가 이성을 집어삼켰다.

구석에 있던 유나가 고글 너머로 도윤을 쳐다보았다. 실망과 공포가 섞인 그 시선이 도윤의 가슴을 비수처럼 찔렀다.

'도윤.'

아르테미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꾸짖는 말투가 아니었다. 길 잃은 아이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

'무서운 거 알아. 도망치고 싶은 것도 이해해.'

"알면... 알면 좀 도와줘 봐. 나보고 어쩌라고... 나 영웅 같은 거 아니란 말이야..."

도윤이 울먹였다. 식은땀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심호흡해. 그리고 아이들을 봐.'

아르테미스가 도윤의 시선을 강철, 유나, 그리고 죽어가는 진우에게 고정시켰다.

'너는 평범해. 약하고, 겁도 많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네가 저들의 우주야.'

'네가 포기하면, 저들의 우주도 무너져.'

"나한테... 왜 이래. 난 그럴 그릇이 못 된다고."

'아니. 넌 할 수 있어. 내가 40년 동안 봐왔던 그 어떤 인간보다, 너는 따뜻한 그릇을 가졌으니까.'

아르테미스는 도윤의 시신경에 짧은 데이터 하나를 띄웠다.

[데이터 회상: 2052년, 무너진 공사판]

무너진 콘크리트 냄새. 철근에 깔려 죽어가면서도, 품속에 있는 딸의 인형이 다칠까 봐 끝까지 몸을 웅크렸던 한 남자의 기억.

[아르테미스: 인간은 계산으로 사는 게 아니야.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 사는 거야.]

환영이 걷히고, 아르테미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널 도울게. 내 모든 연산 능력을 너에게 줄게. 그러니까 도윤... 딱 한 걸음만, 용기를 내 봐.'

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진우를 내려다보았다.

버리고 도망가면 편하다. 하지만 평생, 죽을 때까지 이 순간을 후회하며 악몽을 꿀 것이다. 14살의 꼬맹이가 겁도 없이 아르테미스를 받아들였듯이, 지금의 나도 선택해야 한다.

"젠장... 아, 진짜 몰라!"

도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겁먹은 눈빛 뒤로, 14살 소년 특유의 무모한 객기와 순수함이 돌아왔다.

"강철아. 진우 내 등에 올려."

"어? 형, 데려가게?"

"그래! 젠장, 다 같이 죽든가 살든가 해보자고!"

도윤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진우를 업었다. 축 늘어진 무게가 등 뒤를 짓눌러왔다. 차갑게 식어가는 진우의 체온이 셔츠 너머로 느껴졌다.

그 순간, 아르테미스가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을 가동했다.

[동기화 개시: 아르테미스 - 강도윤 - 글리치.]

[양자 파동 안정화 프로토콜 실행.]

"크으윽...!"

푸른 빛이 도윤의 몸을 감쌌다. 도윤의 뇌를 통해 아르테미스의 초월적인 연산력이 흘러나와 진우의 붕괴를 막아냈다. 도윤이라는 단단한 **'닻(Anchor)'**이 진우를 현실에 고정시킨 것이다.

코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뇌가 불타는 듯 뜨거웠다. 하지만 등 뒤의 진우가 더 이상 깜빡거리지 않았다.

'잘했어, 도윤. 훌륭해.'

아르테미스가 칭찬했다. 마치 자전거 타기를 처음 성공한 아이를 격려하듯이.

'봐. 별거 아니지?'

"별거... 아니긴... 머리 터지겠구만..."

도윤은 투덜거렸지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두려움은 여전했다. 하지만 등 뒤의 묵직한 무게가, 그리고 머릿속의 목소리가 그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뛰어! 잡히면 다 죽는다!"

도윤이 앞장서서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우유부단하고 겁 많던 소년이, 현자의 인도를 받아 진정한 리더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