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을 보며 아방가르드와 가스라이팅을 떠올리다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무심코 옷 서랍을 열었다. 손을 휘저으며 양말을 찾다 보니, 한쪽 구석에 처박힌 '페이크 삭스(발목 양말)'와 요즘 겨울이라 꺼내 신는 '긴 양말'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이 양말들을 보며 문득 지난날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20대였을 때, 우리는 기를 쓰고 양말을 신발 속으로 숨겼다. 정장 바지 위로 하얀 양말을 올려 신은 윗세대들이 너무 '올드'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패션이란 발목을 시원하게 드러내고, 그들과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거리를 보면 어떤가. 10대, 20대 젊은 친구들은 질색하며 발목 양말을 벗어던진다. 대신 마치 우리 아버지의 전유물 같았던 두꺼운 흰 양말을 종아리까지 끌어올려 신는다. 그들에게 발목 양말은 이제 '아저씨, 아줌마'의 상징이 되어 버린 탓이다.
이 양말 한 켤레가 유행의 본질을 명확히 말해 준다.
유행은 '새로움'이 아니라 '손절'이다
우리는 흔히 유행이 뭔가 더 세련되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양말의 역사가 보여주듯, 유행의 본질은 단순하다. 바로 **"나는 당신들(기성세대)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세대 간의 '손절'**이다.
나의 20대가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며 양말을 숨겼듯이, 지금의 20대는 나를 부정하며 양말을 다시 꺼내 신는다. 유행은 새로움의 발견이 아니라, **이전 세대와의 철저한 '결별'이자 '분리'**일 뿐이다.
런웨이의 난해함(아방가르드)은 '방향지시등'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패션쇼에 등장하는 그 기괴하고 난해한 옷들도 이해가 간다. 사람들이 "저걸 도대체 누가 입어?"라고 비웃는 그 과장된 아방가르드 디자인들. 그것은 사실 입으라고 만든 옷이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대중에게 **"이제 유행은 이쪽으로 갈 거야"**라고 가리키는 거대한 나침반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존 관성에 젖은 사람들의 눈을 돌리게 하려면, 신호는 아주 강력하고 모호해야 한다. 그래야 쳐다보니까. 즉, 괴상한 옷은 판매용 상품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인 셈이다.
패스트 패션: 획일화를 '멋'이라고 가스라이팅 하다
하지만 이 흐름을 자라(ZARA)나 H&M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캐치해서 싼값에 뿌리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 유행은 사망 선고를 받는다.
너도나도 입을 수 있게 되는 순간, 유행의 핵심인 '차별화(다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트렌드를 앞서간다고 믿으며 옷을 사지만, 실상은 거대 자본이 만든 '획일화'를 '멋'이라고 믿게끔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성을 찾기 위해 지갑을 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은 복제품이 되어 버리는 아이러니. 그래서 **패스트 패션 매장에 옷이 깔리는 것은, 곧 그 스타일의 '종말 선언'**과도 같다. 소비가 정점에 달해 개미들이 몰리는 순간이, 주식 시장의 고점이자 끝물인 것처럼 말이다.
다시 서랍 속 양말을 집어 든다. 결국 유행이란 돌고 도는 술래잡기다. '지루해진 현재'와 '새로워 보이는(사실은 오래된)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결별.
오늘도 거리에서 마주칠 수많은 사람의 옷차림 속에서, 그들이 기성세대에게 보내는 '손절'의 신호를 흥미롭게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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