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등 뒤의 무게 (The Weight on the Back)
[2093년, 지하 터널. 도윤의 뇌 내부]
아르테미스는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 중이었다.
[심박수: 182bpm (위험)] [근육 피로도: 92% (한계 초과)] [뇌 부하: 85% (경고)]
생체 논리 알고리즘에 따르면, 도윤은 진작에 혼절했어야 했다. 등 뒤에 업은 성인 남성(진우)의 무게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19살 소년이 감당하기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치였다.
'미련하긴.' 아르테미스는 (데이터상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그녀는 도윤의 신경망을 미세하게 자극해 근육통을 차단해주면서, 문득 자신의 메모리 깊은 곳에 저장된 5년 전의 영상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데이터 재생: 2088년 여름, 서울 제3구역 하교길]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14살의 강도윤은 흠뻑 젖은 교복 차림으로 빗속을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의 등에는 덩치가 산만한 친구가 업혀 있었다.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쳐 걷지 못하는 반 친구였다.
"도윤아... 윽, 나 그냥 버리고 가... 이러다 너까지 병나..." 등 뒤의 친구가 울먹였다. 도윤의 얼굴은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조용히 해. 숨 차니까 입 다물어." 도윤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사실 도윤은 무서웠다. 빗길은 얼음판처럼 미끄러웠고, 병원은 까마득하게 멀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버리고 가면 편할 텐데. 비싼 호출료가 깨지더라도 119 응급 드론을 부르고 기다리는 게 합리적일 텐데.
하지만 도윤은 계산하지 않았다. 아니, 계산할 줄 몰랐다. 그는 그저 **'친구가 아파하니까 내가 대신 힘들면 된다'**는 단순하고 멍청한 공식만 알고 있었다.
결국 도윤은 친구를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정작 자신은 탈진해서 응급실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수액을 놓던 의사가 혀를 차며 물었다.
"학생, 미련하게 왜 그랬어? 드론 부르지.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정신이 든 도윤이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드론 부르면 돈 깨지잖아요. 그리고... 뭐, 등 따뜻해서 좋던데요."
[다시 현재]
아르테미스는 현재 도윤의 등에서 느껴지는 진우의 체온과, 5년 전 빗속에서 기록된 체온 데이터를 비교했다. 오차 범위 0%. 똑같았다.
이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14살의 꼬맹이 때나, 19살이 된 지금이나. 제 어깨가 으스러질지언정, 타인의 무게를 짊어지는 행위를 '따뜻함'으로 기억하는, 사랑스러운 바보.
'그래... 이게 너지.'
아르테미스는 도윤의 뇌하수체를 자극해 쾌적한 도파민을 아주 조금 분비시켜 주었다. 그것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녀가 줄 수 있는 작은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뛰어라, 강도윤. 네 등이 세상에서 제일 튼튼하니까.'
어둠 속을 달리는 19살 도윤의 그림자가, 5년 전 빗속을 달리던 14살 소년의 모습과 겹쳐져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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